등산객 4명이 불에 타 숨지고 60여명이 부상을 입은 화왕산 억새태우기 행사는 애초에 대형 산불이나 안전사고 위험을 안고 있었다는 지적이 많다.
정월대보름날이라고는 하지만 수만명이 야간에 산 정상에 운집한 가운데 대규모 산불 축제를 벌이는 행사 성격에 비해 주최 측인 창녕군의 사전 안전조치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으로 나타나 책임 소재를 둘러싼 거센 시비를 부를 전망이다.
이름 자체가 '큰 불의 뫼'란 뜻인 화왕산(火旺山)에서 '억새태우기 행사'가 처음 열린 것은 1995년 2월 14일. 당시에도 산불 위험이 크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주최 측은 "화왕산에 불이 나면 모든 것이 잘 풀린다"는 주민들의 구전 속설을 등에 업고, 인근 부곡온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숙박료 할인 이벤트까지 벌이며 행사를 강행했다.
첫 행사 때는 창녕군도 혹시 산불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행사장인 둘레 2.6㎞의 억새평원 주위의 잡목과 잡초를 30m 폭으로 걷어내 '방화선'을 구축했고 유사시 투입할 공무원과 예비군 1천여명을 비상대기시켰다.
다행히 첫해 행사가 무사히 넘어가고 그 이듬해까지 행사가 이어졌으나 매년 행사를 여는 부담과 생태적 문제를 야기한다는 문제 제기 등에 밀려 세 번째 행사는 4년 후인 2000년에야 겨우 열렸다. 그 이후로는 3년 주기로 명맥을 이어 오다 6회째인 올해 결국 대형 사고를 초래하고 말았다.
행사 내용만 보면 올해도 매우 다채로웠다. 따오기 번식기원과 액땜 연날리기, 소원풀이 짚단 태우기, 풍물놀이, 산상 문화예술공연 등의 식전 이벤트에 이어 본행사로 상원제, 소원풀이 짚단·달집 태우기가 이어졌지만 하이라이트인 억새태우기를 하다 참사를 빚은 것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18만여㎡의 억새평원이 불바다로 변하면서 산 정상 전체가 화염에 휩싸여 20여분간 50여m 높이의 불기둥이 치솟는 장관을 연출했다가 서서히 꺼져야 했는데 돌풍을 타고 갑자기 방향을 바꾼 불길이 등산객들을 덮치는 바람에 '재앙을 막기 위한' 행사가 재앙으로 돌변한 것이다.
▲ 9일 밤 발생한 화왕산 억새 태우기 참사로 중화상을 입은 한 시민이 대구 푸른병원에서 긴급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 작가인 이 시민은 동료를 구하려다 참변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