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7살에 대학교 화학 연구실에서 폭발 사고를 당해 전신 89%의 화상을 입고 푸른병원에 입원했었던 환자입니다. 어느덧 푸른병원과 함께한 지 3년이 됐어요! 당시 2019년 겨울, 제가 일하고 있던 연구실 폐시약통에서 불이 났고 곧이어 폭발이 일어나며 근처에 있던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이 들고 대피하려 했을 때는 연구실 탈출로가 너무 좁고 열악했기 때문에 탈출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몸에 불이 붙은 채로 한참 시간이 지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화상을 너무 크게 입게 됐어요. 그 길로 곧 119 구급차가 왔고 저는 중환자실에서 며칠간 잠을 잤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말할 수도, 앞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얼굴을 포함한 제 온몸은 붕대로 감겨 있었습니다. 절망적인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중간중간 수술실과 중환자실에서 들려오는 저를 돌봐주시는 분주한 간호사님들의 목소리와 지나다니며 제 손을 꼭 잡아주는 온기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 날 수술에서는 “애 다리를 이렇게 놔야 편하지! 지은아, 잘한다 잘한다 힘내자 오늘도 잘하자” 하면서 계속 저를 보살피는 목소리를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정혜령 마취과장님이셨습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몰라도 내가 많이 다쳤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나를 살리려고 하는구나’라고 느끼면서 마음으로 조금씩 힘을 내며 정신을 차렸습니다. 몇 차례의 수술이 지나고 나니 정신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목에 호스가 꽂혀 있어서 말은 할 수 없었지만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백진오 과장님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제가 너무나 중환자라 그런지 사뭇 진지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수술을 너무나도 잘 해주셨고 매번 조금씩 나으며 수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백 과장님께서 “역시나 이번에도 살아나셨네요.” 하며 블랙코미디를 날리셔서 속으로 많이 웃었습니다. 물만 마시다가 건더기가 있는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했던 날, 그날 백 과장님께서 제가 제일 먹고 싶었던 시원한 팥빙수를 사주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먹었던 그 슈퍼마켓 팥빙수는 저의 27년 인생 중에 가장 맛있는 음식입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중환자실로 찾아와서 제 손 관절이 굳을까 봐 손 관절 마디마디를 만져주신 그 분이 전재홍 원장님인 것도 알게 됐습니다. 안 보였지만 매일 누가 제 손을 만져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피와 재로 범벅이된 제 손을 손수 닦아주셨어요. 그 덕분에 저는 오늘 이렇게 걸어 다닐 수 있게 됐고 글도 쓰고 공부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수술을 수십 번했습니다. 처음에는 수술이 무서워서 전날 밤을 꼬박 새웠었습니다. 그런데 몇 차례 수술이 지나고 나서는 의사선생님과 수술실 간호사님들을 믿게 되었고. 수술실에 들어가서는 간호사님들이 저를 편하게 대해주셔서 어떤 날은 웃으면서 ‘그냥 한번 자고 일어나자’ 하는 마음으로 수술에 임하기도 했습니다.
음료수만 마시던 시절에는 제가 손을 움직일 수 없어서 간호사님들이 세팅을 해주셨습니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던 물이 촉촉하고 너무 잊을 수가 없어서 몇 분마다 먹여달라고 귀찮은 부탁을 했는데 하나도 귀찮아하지 않고 바쁜 와중에도 입에 빨대를 물려주셨습니다. 제가 입원한 이후에도 크게 다친 환자분들이 밤, 낯 가리지 않고 들어왔습니다. 저는 많이 놀란 적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흔들림 없이 간호사님들이 처치하고 간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중환자실 간호사님들 정말 너무 고생하십니다. 많이 배우고 감동받았습니다. 부탁도 말을 못 해서 다소 매너 없이 혓바닥 똑딱 거리는 소리로 간호사님을 불러야만 했는데 매번 와주셔서 다른 데는 불편한 곳이 없는지 확인해 주시고 돌봐주셨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저를 바로 옆에서 돌봐주셨던 분들이기 때문에 감사한 것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또 치료실 선생님들도요. 매일 두 번 오는 치료 시간이 저에게는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너무 아팠고 소리 지르는 저를 보는 치료사분들도 힘들었을 텐데 친구처럼 저에게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유튜브에는 뭐가 재밌는지 추천도 해주며 치료를 잘 해주셨습니다.
그러고 나면 물리치료실에서 해정선생님이 중환자실에 와서 치료를 해주셨습니다. 목과 손가락 치료를 먼저 했었는데 너무 시원하고 해정쌤이 말을 너무 재밌게 하셔서 저는 이 시간을 매일 기다렸습니다. 일반 병실로 올라와서는 승현쌤과 물리치료실 실장님께도 치료받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어요! 감사합니다.
저는 중환자실에서 여기 계신 분들은 사람이 아니고 천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살아서 여기를 나가야겠다고 다짐했고 버텨서 두 달 뒤에 일반 병실로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 8층에서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길어봤자 일 년이라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냈는데 화상을 입은 상처는 인내심을 갖고 오랫동안 관리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아프고 가려워서 힘들었다면 나중에는 앞으로 어떻게 이 모습으로 살아가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엄마랑 둘이서 밤을 울면서 보낸 적도 많습니다. 요즘 방에서 누가 통곡하면서 울면 옆방인 저희 방에서 들리는데 한동안 매일 밤을 그랬다니 저는 엄청 별난 환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8층 임유승 수간호사님을 비롯한 간호사님들께서 친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와 주셔서 마음을 풀었고 언니, 친구, 엄마로 생각하면서 여기 푸른병원 8층을 집이라고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만 하게됐어요. 앞으로의 인생이 기대될 뿐이에요!
제가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아마도 3층 피부 재활센터 간호사님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랫 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습니다. 두꺼운 상처와 감기지 않는 눈을 보는 게 무섭고 싫었거든요. 외래 진료로 외출을 하게 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운 여름에도 온몸을 다 덮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저 자신도 보기 싫은 상처를 꼼꼼히 체크하고 사랑으로 림프 마사지 치료를 해주신 분들이 바로 피부 재활센터 간호사님들이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는 이제 눈을 잘 감고 밖에 마스크를 쓰고 나가면 사람들이 다친 줄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부가 좋아지는 게 눈으로 보입니다. 나을 것 같지 않던 두꺼운 상처가 얇아졌고 이제 간지러움을 거의 느끼지 않습니다. 많이 우울했었는데 아침마다 에너지가 넘치는 피부 재활센터에서 간호사님들이랑 지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밝아졌습니다. 정상에 가까워지려면 앞으로도 계속 관리를 받아야겠지만 저는 이제 제 모습이 충분히 예쁜 것 같고 스스로가 좋습니다. 같이 울고 웃고한 우리 예쁜 정윤주 간호 과장님, 박은주, 조현옥, 윤민정 그리고 이미영쌤 사랑해요♥︎
무뚝뚝하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세심한 김상규 병원장님께 가장 큰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저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마 저는 대구 이 자리에 푸른병원이 없었다면 지금쯤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일 거에요. 저에게 새 삶이라는 큰 선물을 주신 김상규 병원장님, 저의 주치의 백진오 과장님, 정형외과 전재홍 원장님, 정혜령 마취과장님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