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5-26 15:58
집 보다 더 편하게 느껴진 푸른병원
 글쓴이 : 양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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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명(서구 내당동)

  409호 양종명 환자 보호자입니다. 길고 긴 겨울이 지났습니다. 어느 해 보다 정말 힘들고 긴 겨울이었습니다. 넉넉하지 않지만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생활을 하는 중에 아이 아빠가 화상으로 심하게 다쳤습니다.
  새벽 한 시... 정신없이 119를 타고 도착한 병원은 낯설고 두렵기만 했지요.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간호사님들과 손용훈 부장님의 응급처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겨우 유리문 한 장 밖에 있는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기만 했습니다. 곁에서 힘내라고 얘기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검게 그을린 얼굴의 남편은 이미 정신이 없었습니다.
  화상도 화사이지만 유독가스를 많이 마셔서 폐손상이 우려되고 호흡이 힘들어 위독하다는 말에 저는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왜 하필 나인지 원망할 대상도 찾지 못했습니다. 오직 남편이 무사하기만을 빌었습니다. 이제 겨우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 낙으로 살고 있는데 이 아이들의 빛나는 미래를 보여 주지 못하고 떠나 보낼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곧 산소호흡기가 채워졌고 링거가 여섯 개 일곱 개 사용되었고 코에도 호스가 삽입... 정말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낯선 모습의 남편이 누워있었습니다. 매일 피검사 수치가 예민해졌고 맥박수 호흡상태 혈압수치 하나하나까지 피를 말리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살아날 가망이 조금씩 옅어져가고 있던 중 16일만에 기적적으로 남편은 호전되어 정신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상체 30%의 3도 화상으로 아주 중증화상이다 보니 신체 스스로의 스트레스로 인해 십이지장에 천공이 생겨 정신을 차리고도 한달 가까이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한 채 영양제로만 버티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표피제거 수술과 자가 피부 이식수술도 여러 번 받았지요. 중환자실에 있는 한 달 반동안 근무하시던 간호사님들은 본인들의 일처럼 같이 힘들어 해주시고 안타까워 하시며 천공 때문에 혈변이 나와도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처리해 주셨어요. 팔도 제대로 들 수 없는 남편을 저대신 가래를 받아주시고 약을 먹여주고 말동무까지... 정말 뭐라 말 할 수 없이 친절하셨습니다. 수간호사님은 앞으로의 일을 불안해하는 저를 천천히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긴 한 달 반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일반병실로 옮길 때 “이런날도 오는군요”하시며 같이 기뻐하셨어요. 일반병실에 와서 매일 치료를 받고 끝날 것 같지 않던 입원생활도 드디어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5개월간의 시간을 병원에서 지내다 보니 오히려 우리집보다 더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남편의 등과 팔에는 넓은 화상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처음 보시는 분들은 많이 놀라면서 안타까워 하시지만 저는 그래도 감사합니다. 긴 겨울도 봄의 따스한 입김에 옷깃을 여미고 물러나는 것처럼 우리의 힘든 시간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잘 견뎌 온 것 같습니다. 한 분 한 분 찾아 뵙고 인사 드리는게 마땅하겠지만 병원의 여러 관계자분들게 마음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이번 봄은 그 어느 해 보다 더 찬란한 계절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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